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국군사회의 쿠데타 (문단 편집) === 은하제국의 권력충돌 === 오래 전, 은하연방을 무너뜨리고 제국을 선포하며 제위에 앉은 [[루돌프 폰 골덴바움]]은 그간 자신을 보좌하며 제국을 세우는데 큰 공을 세운 측근들에게 작위를 내려 영광스러운 제국의 첫 [[문벌귀족(은하영웅전설)|귀족]]으로 임명하였다. 새로운 제국의 지배계층으로 등장한 귀족들은 황제의 비호 아래에서 여러 특혜를 부여받아 세대와 세대를 거치면서 권력과 부를 쌓아나갔다. 시대가 바뀌어가며 제위를 둔 권력투쟁으로 숙청의 피바람이 불어 수많은 귀족들이 죽거나 몰락했지만, 한 번 지배계급으로 자리잡은 귀족 계급은 타파되지 않고 다른 귀족들이 빈 자리를 채워가며 수 백년간 절대권력을 독점하게 된다. 그런데 [[프리드리히 4세]] 시대 들어 이러한 제국의 권력 구도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수십 년간 무탈하게 제위를 지키고 있으나 정무에는 무관심했던 황제는 유흥과 여색에 심취해있는 동안 자신을 대신해 총애하는 소수의 측근 신하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명했고, 은하제국의 권력은 제국 정부를 통솔하여 모든 정무를 처리하는 제국 재상대리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후작과, 황제의 절대적인 총애 아래 전례가 없을 정도의 쾌속 진급을 거듭하여 최연소 원수직위를 하사받아 군권을 거머쥔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후작의 손아귀 안으로 나누어졌다. 재상대리 리히텐라데 후작은 귀족 출신이나, 귀족보다는 관료에 자기 정체성이 강했던 인물로 정사에 무관심한 황제를 대신하여 10년 넘게 사실상 제국의 통치자로 군림하며 외척을 포함한 문벌귀족들이 국정에 필요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양자간의 충돌이 발생할 때마다 귀족들의 불만이 터져나왔으나 후작은 귀족계층과의 직접적인 대립을 회피하며 제국 정부의 권한과 법률, 법률상의 전례 등을 들어 사태를 최대한 온건하게 처리하고 있어 의외로 귀족들과의 사이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더구나 리히텐라데 후작은 어디까지나 황명을 대신하는 충직한 관료로써 사적인 권력다툼에는 무관심한 성향이기에 후작의 존재를 경계하는 대귀족들조차 프리드리히 4세 시대가 막을 내리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인물이라 여기고 있어 그를 그다지 위협이라 보지 않았다. 따라서 리히텐라데 후작과 문벌귀족 상호간의 관계는 언제나 무난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반면 로엔그람 후작은 한미한 제국기사 가문 출신으로, 사실상 평민이나 다를 바 없는 배경을 가지고 태어나 문벌귀족 계층과의 접점이라고 할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프리드리히 4세의 '''절대적인''' 총애 아래 제국 유년군사학교 졸업 시점부터 제국 역사상 전례가 없던 임관 특혜를 하사받았고[* 유년학교 졸업자는 준위 계급으로 임관하게 되어있는데, 프리드리히 4세는 라인하르트 단 1명만을 소위 계급으로 임관시키도록 군부에 명령했다. 이는 전례가 없는 특례이자 제국 황제가 한낱 유년학교 졸업생 한 명을 언급하며 명령을 내린 엄청난 일이었다.] 이후에도 공적을 세울 때마다 진급을 명령받았다. 출세를 거듭하며 1개 함대를 지휘하게 된 시점부터는 빛나는 무훈을 연달아 세워 끝내 불과 20세에 제국원수에 서임되었고, 급기야 오래 전 후계가 끊어졌던 명문 로엔그람 백작 가문을 이어받아 문벌귀족에 편입되는 등, 귀족간의 기존 질서를 심각하게 해치는 위협적인 존재로 자라나게 된다. 이렇게되자 처음에는 '미천한 자'가 분에 넘치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고 불쾌함을 감추지 못하던 문벌귀족들 사이에서 피어나던 불평불만이 곧 극심한 분노로 자라나게 되었다. 선민의식에 찌들어 있는 문벌귀족들을 혐오하던 로엔그람 후작도 귀족들의 불평불만을 대놓고 무시하더니, 곧 자신을 비꼬는 귀족들의 면전에 대고 독설을[* 라인하르트는 귀족들을 하나같이 무능력한 주제에 분에 넘치는 특혜만 가지고 사회에 기생하는 '''기생충'''들이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쏘아붙이는 통에 로엔그람 후작과 문벌귀족 사이의 관계는 가히 파멸적인 수준에 다다르고 말았다.[* 더군다나 로엔그람 후작의 친누나 안네로제는 황제의 총애를 받는 '''애첩'''으로서, 만약 안네로제가 황제의 아들을 임신하기라도 하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가의 엘리자베트와 리텐하임 후작 가의 자비네로 양분된 제국의 차기권력구도가 완전히 뒤집힐 수도 있는 판국이었다. 문벌귀족들이 로엔그람 후작을 좋게 볼 수 있는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던 것. 허나 모든 문벌귀족이 생각이 같지는 않아서 몇몇의 경우 라인하르트를 사위로 들이려는 시도는 했다고 한다. 라인하르트가 관심을 안 줘서 실패했지만.] 로엔그람과 리히텐라데, 2명의 후작은 각기 다른 이유로 문벌귀족층과 시시각각 충돌을 거듭하였고 [[프리드리히 4세]]의 즉위 이후 한동안 평화롭던[* 이 시대에도 암투가 없던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클롭슈톡 사건]]에서 클롭슈톡 후작이 손쉽게 폭탄을 가지고 갈 수 있던 것도 원래 대귀족인데다가 살벌하게 정치싸움이 일어나던 때도 아니었기 때문으로 설명한다.] 제국 귀족 사회에 전운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우주력 796년 말, [[프리드리히 4세]]는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사망했다. 국무상서 리히텐라데 후작은 외척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와 리텐하임 후작가가 자신들의 여식을 제위에 앉혀놓고 국정을 농단하는 꼴을 볼 생각이 없었고, 때마침 자신을 총애해주던 황제가 급사하여 향후 입지가 애매해진 로엔그람 백작과 이해관계가 일치하게 되어 함께 손을 잡아 선제의 손자 [[에르빈 요제프 2세]]를 황제로 옹립하게 된다. 이는 향후 제위를 두고 서로를 경계하던 문벌귀족들에게 큰 충격을 준 기습적인 조치였고, 귀족들은 선제가 붕어했으니 조용히 물러날 '폐물'과 황제의 총애 덕에 이름뿐인 귀족에서 제국원수까지 오른 [[하극상]]의 전형 '금발 애송이'가 국정을 농단한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자신들의 여식을 여황제로 올릴 꿈을 꾸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리텐하임 후작은 대립을 멈추고 리히텐라데-로엔그람 추축을 타도한다는 공통의 목표 아래 결집, 제국 귀족층이 하나로 뭉치게 된다. 은하제국 우주함대는 우주함대 사령장관을 맡고 있던 로엔그람 후작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함대 사령관 모두가 라인하르트의 부하였던 것이 아닌 탓에 군부 내부의 문벌귀족 파벌에 속하거나 반라인하르트 성향을 가지고 있던 제독, 장교들이 문벌귀족측에 합류 의사를 표하고 있었다. 더구나 귀족들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자신들의 사병대들은 규모와 질적 측면에서 제국 중앙군에 필적하는 수준, 내전이 벌어진다면 순순히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당대 최고의 명장이던 라인하르트는 문벌귀족들의 군재가 0에 수렴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므로 딱히 겁먹거나 하지 않았지만 자신 휘하에 있는 전 병력이 문벌귀족과 대결할 때 [[자유행성동맹군]]이 다시 한번 내침한다면 라인하르트 입장에서는 골치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동맹군은 제국령 침공작전의 참패로 주력함대 대부분이 소멸되었으나 내전으로 얼룩진 제국에 치명상을 입힐 기회를 있다면 이를 멍하니 바라볼 이유가 없을 정도의 전력은 남아있었다. 병력을 다시 긁어모으면 몇 만척 규모는 될 것이니 묵과할 수가 없는 수준이고, 애초에 동맹군 지휘관으로는 그 [[양 웬리]]가 직접 나설 것이 뻔한 일이었다. 이 정도면 골치가 아픈게 아니라 자칫 내전에서 패배하거나 승리한다고 해도 치명상을 입고 무의미한 승리자가 될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그리하여 라인하르트가 짜낸 묘안이 스파이를 잠입시켜 동맹군 내 불평분자를 선동하여 내란을 조장하는 것이었다.[* 후지사키 류 코믹스판에서는 [[오베르슈타인]]이 짜낸 묘안인것으로 나온다.]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라인하르트 입장에서는 문벌귀족과의 전쟁이 피할 수 없는 일이 된 상황에서 동맹군이 내분을 수습하느라 제국의 내란에 신경쓰지 못하는 수준이면 족했다. 라인하르트는 임무를 수행할 스파이로 9년 전 [[엘 파실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아서 린치]] 소장을 택했다. 내전을 일으키기 직전, 라인하르트는 [[인도주의]]를 명분으로 동맹군에 양측이 잡은 포로 200만 명을 고국으로 돌려보내자고 제안했다. 당시 선거를 앞두고 있던 트뤼니히트 임시정권은 유권자들의 표를 얻을 생각으로 흔쾌히 수락했고, 우주력 797년 2월 [[동맹&제국 포로교환|포로교환식]]이 열려 총 400만 명에 달하는 포로가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라인하르트는 포로교환식에 전 인류의 관심이 집중된 사이 아서 린치를 비롯한 수백 명의 포로와 구류자들을 [[페잔 자치령]]을 통해 동맹에 잠입시켰다. 동맹도 신원불명의 사람들이 페잔을 경유하여 동맹에 입국했다는 사실을 파악했지만 리스트에 미비한 점이 있어 아서 린치는 들키지 않고 동맹에 입국할 수 있었다. [[양 웬리]]도 페잔에서 귀환한 자들을 주목하고 있었지만 리스트가 불완전한 점, 동맹군 통합작전본부 내부에서 '양 웬리는 적의 도발에 대응하면 그만이지 페잔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월권행위이다'라는 여론을 의식하였기 때문에[* 앞으로 일어날 쿠데타에 대응하기 위해 [[하이네센]]으로 갈 필요가 있었는데 괜히 분란을 일으켰다가 하이네센 일시귀환 요청이 거부당하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얌전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